[스포츠][단상] 북중미 월드컵 16강전 3일차,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을 순간"

H영자        작성일 07-07        조회 44     

1 [개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마무리]

- 멕시코-잉글랜드전을 보니,
2002년 우리나라의 독일전이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뭐랄까 역부족인 상대
넘기에는 아슬아슬하고, 우리가 주도하지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상대...

딱 잉글랜드가 그런 롤을 했죠.
멕시코로서는 3-2를 만들고 따라가다가 진 게 물론 아쉽겠지만,
상성이 완전 상극인 상대로 3-0 같은 스코어보다는,
훨씬 명예로운 퇴장이지 않았나 싶어요.



2 [볼은 지나도 너는 못 지나간다]

- 한국축구 역사와 관련된 기록에 보면 (제가 지금 책을 못 찾겠네요)
일제시대의 경평 축구는 정말 치열했다고 합니다.
관중들 부터가 "(다리를) 걷어차라! 죽여라!"가 기본 패시브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그냥 피식 할 수 있는 기록이겠지만,
당시 팬들은 현실의 울분을
축구장에서 일어나는 필사적인 파이트를 보면서 풀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해방 후, 펠레의 방한 경기때 하도 다리를 까서 축구를 거의 할 수 없게 되자,
효창 운동장의 팬들이 "내가 펠레 보러 왔지 (다리를 까는) 축구를 보러왔나!"
라고 야유를 퍼부었다는 기록도 기억이 납니다.

그치만 소위 MZ 시대가 그러하듯이,
다시는 과거의 교무부장 빠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축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파라과이팀의 시계는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를 조금 무디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월드컵 사상 가장 추한 패자라는 악명도 얻었죠.

인터뷰를 보니 아예 안티풋볼에 대한 자각이 없더군요. 팬, 감독, 선수 모두가...

개못하는 독일도 떨어뜨린 파라과이...
나름 업적을 세운, 존경받는 패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들이 걷어찼습니다.

어떤 분들은 투혼, 정신력 이야기하길 좋아하지만,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면 파라과이같은 축구가 될 수 있으니,
자기만의 투혼, 자기만의 정신력은 지양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3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는 순간]

- 2014년 브라질이 1-7로 질때...
라이브로 보면서도 참 비현실적이다 싶었습니다.

그걸 홀란드가 다시 만들었습니다.


슛 두 번,
두 골,
상대는 브라질,
조별 리그도 아니고 월드컵 8강의 길목,


지저분하게 넣는게 아니라 마치 연습하듯 가뿐하게.

너무 완벽해서 뭐랄까 꿈 같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축구선수들이 꾸는 꿈,

"내가 브라질 상대로 월드컵에서 2골을 넣을거야."


그걸 실현시킨 선수가 우리 현실 세계에 있다는게,
다른 팬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축구팬으로서, 브라질의 탈락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박수가 안 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4 [단 한번에 경기를 끝내는 능력]

캐나다-모로코전은 사실 의외로 박빙이었습니다.
첫번째 골이 나오기 전 까지는...

그리고 1골, 2골, 3골...
모로코는 골을 넣은 순간부터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역습 때는 반드시 3명 이상이 같이 전력으로 달리면서 상대방 수비의 선택지를 지웠습니다.

모로코에게 공간을 주는 팀은,
그 어느 팀도 득점을 내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공간을 안 줄려고 90분을 노력하지만,
수준높은 팀에게는 볼 하나의 순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마찬가지 상황이 오늘 포르투갈-스페인전에서 펼쳐졌습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은 전술과 똑같은 팀컬러로 나온 두 팀은,
90분 내내 솔직히 어느 한 팀이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메리노에게 마지막 킬패스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는건 크랙일수도, 팀이 가진 운일 수도 있지만
준비없는 자는 기회가 와도 살릴 수 없죠

그 차이가 홀란드와 호날두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호날두가 전성기 시절이었으면 넣었을 공이 몇번이나 왔지만
호날두는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5 [정치가 축구에 영향을 못 미쳐? 왜? 누구 맘대로?]

- 48개국 월드컵은 처음이지만,
토너먼트 경기가 2배로 늘어났더니,
드라마도 2배로 늘어났습니다.

어느 경기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경기가 없고,
드라마가 아닌 경기가 없습니다.

저 파라과이-프랑스전 마저도 영웅과 악당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음 월드컵도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너무 재밌어요.



그리고 그 훌륭한 스토리에 초를 치는 미국과 피파의 결정은,
홀란드와 다른 의미로, 눈으로 보면서도 못 믿는 순간입니다.

"퇴장 선수는 다음 경기를 뛸 수 없다"
왜? 누구 맘대로?
트럼프님은 그걸 바꾸길 원하십니다.

정말 오래된 축구팬으로서 수치 그 자체입니다.

히혼의 수치는 그래도 룰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2차대전 안슐루스의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역사와 야사로 남은 오스트리아전, 폴란드전의 기록들.
축구가 아닌 걸로 축구 결과를 조작하려는 외압,

정확하게 그걸 미국이 저지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급이죠.
이건 축구에 대한 모독으로 길이길이 남을 겁니다.



트럼프가 축구팬이 아니라서 그냥 저냥 괜찮네 싶었던 저의 감상은 순진했습니다.
축구 자체를 위해서는 해가 되는 대통령입니다.

미국은 정말 겁나 에너제틱하고 젊고 잠재력 있는 팀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만큼은 명예가 없네요.



48개국 출전 월드컵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 개최는...아.. 이제 그만 했으면....

벨기에의 명예로운 승리를, 경기력 외적인 이유로 기원하면서,
[어차피 볼거잖아???] 그래도 월드컵의 노예... 신세...를 한탄하면서...
...벨기에전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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