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축구] 아시안컵 한국 국가대표팀 감상평
제임스 작성일 02-07 조회 476
요즘 바빠서 응원팀 경기도 제대로 못 챙겨보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아시안컵 경기는 다 챙겨봤네요. 조별리그 경기는 시간대가 좋아서 편안하게 생각없이 볼 수 있었고 토너먼트 경기인 16강부터는 일부러 각잡고 챙겨봤습니다. 어차피 지고 바로 탈락할거 같아서... 어쩌다보니 결국 4강까지 보게 되긴 했지만요.
0. 국대 축구 이야기는 어렵다
굳이 피지알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한국 국가대표팀에 대해 어지간하면 말을 아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잘 안보니까요. 경기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친선 경기도 별로 챙겨보진 않습니다. 저는 K리그도 안보기 때문에 국대에서 뛰고 있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평소에 어떤 능력과 폼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식견이 좋지 않아서 지지난주에도 보고, 지난주에도 보고, 이번주에도 보고, 다음주에도 봐야 아 이것들이 어떤 놈들이고 어떤 축구를 하려고 하는지 알겠는데 오늘은 이게 특이하구나 이런걸 캐치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를 해봤자 좋은 소리를 듣기가 힘듭니다. 국대에 우호적인 이야기를 하면 국뽕이 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매국노나 악질까가 됩니다. 응원은 뜨거운 가슴으로, 분석은 차가운 이성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겠지만 국가대표팀 이야기를 주제로 하면 감정이 모든걸 다 잡아먹어버리는 모습을 여러번 보게 되죠. 이번 클린스만호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었고요.
결과적으로 더 모르는 이야기를 가시밭길까지 들어가서 섞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생업도 아니고 결국 재미있자고 보는 스포츠인데...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보는건 그래도 국대 경기를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고 그걸 해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전술이면 몰라도 국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파악하기에는 솔직히 이보다 쉬울 수도 없었어요. 옆집 뽀삐...까진 아니겠지만 평소 축구에 관심없는 사람도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보이는 수준이었습니다.
1. 역대급 선수들로 치른 역대급 졸전 대회
우승해서는 안될 팀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건 좀 표현이 틀린 것 같고요. 우승을 할만한 팀은 절대 아니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네요. 일반적으로 이 모양인 팀도 결국 어찌저찌 생명연장을 하다보면 분수에 과분한 성적을 드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합니다. 이번 한국 대표팀도 그렇죠. 우승은 커녕 결승에도 어울리는 팀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6경기를 치렀는데 멀쩡한 경기가 없다시피 했잖아요.
조별리그에서도 차라리 말레이시아전은 경기 자체만으로 볼 땐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진짜 심각한건 요르단전이라 생각했습니다. 누가봐도 요르단이 좋은 팀이었습니다. 결국 리매치에서 그게 잘못된게 아니었다는걸 재현하며 희비가 갈렸죠.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에서 김민재가 있었어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운이 좋았으면 몇개 또 막고 어찌저찌 이기는 사우디전, 호주전의 재현이 될 수 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으면의 이야기.
지금 한국 대표팀 스쿼드 진짜 좋습니다.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전 포지션에 유럽 정상급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어요. 스쿼드에 이렇게 중심축을 차지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 떄의 전술적인 편의성은 진짜 엄청납니다. 다른 선수들은 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보조하는 정도에만 머물러도 훨씬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고, 실제로 다같이 평균적으로 잘하는 스쿼드보다도 강점을 보일 때도 많고요.
역대 최고의 한국 대표팀이라는 표현이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02년, 06년을 포함해서요. 정확히는 역대 최고의 대표팀 스쿼드가 맞습니다.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는 사람이 클린스만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2. 경기 내적으로 느꼈던 점들
전술적으로 세세한 이야기는 안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전술도 잘 안보이지만 한국 대표팀의 전술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당장 지난 아시안컵 때도 대회 도중에 감독이 전술에서 손을 떼버리고 수석코치가 전담을 하면서 준우승까지 갔었잖아요. 벤투는 애초에 선임될 때부터 본인의 코칭 스태프들을 전부 끌고 왔고 성격부터가 엄청나게 고집 있는 사람인데다가 본인이 원하는 전술적인 방향성을 계속해서 밝혀왔기 때문에 신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클린스만은? 모르겠어요. 애초에 언론이나 선수단에게서부터 자유롭고 선수들이 원하는거 다 시켜주는 감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저 양반 전술적으로는 하는게 없다고 선수한테 저격당한게 1, 2년도 아니고 18년 전인 양반인데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뭐 말을 꺼낼 수가 있겠습니까.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 모래쯤 클린스만은 아무것도 안하고 전술은 차두리가 담당했더라 이런 이야기가 나와도 별로 놀라진 않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무능을 이야기하자는게 아니라 그냥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를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래도 경기를 보다보며 느끼는 점들이 있다면, 대표팀이 팀으로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잘 없고 순간순간 선수 한두명의 즉흥적인 움직임에 기대는 모습이 훨씬 크다고 느껴졌다는 점. 공격이나 수비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전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미드필더 지역에서는 어떤 선수가 나오든 간에 전술적으로 고립되고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미드필더 지역에 주로 나오는 선수들이 비난을 십자포화를 받고 있던데 저는 선수의 개인적인 폼보다도 팀에서의 전술적인 환경 탓이 훨씬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공격에서도 정확하고 유효한 공략 포인트가 없으니 순간적인 가속도가 안붙습니다. 아시안컵 내내 그랬어요. 조직적인 전진 패스가 전술적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다보니까 당연히 위협지역으로 공이 안가고 슈팅 자체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선수 개인역량에 기대서 뒷공간을 노리는 패스나 크로스에만 의존하는 경향성이 컸고 결과는 사우디, 호주, 요르단에게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패배했죠. 누가 더 좋은 팀이었냐? 한국이라고 뽑을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었습니다. 좋은 선수가 있는 팀이었고 그것도 경기 직전 득점이라는 천운을 받아 생명연장을 했었죠.
3. 클린스만은 죄가 없다
클린스만을 심하게 욕하고 싶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양반은 한국 대표팀 오기전에도 행적이 뚜렷했던 양반이고 한국에 와서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팀을 이끌고 있을 뿐이에요. "클린스만을 선임하다니 제정신임?"이란 소리가 클린스만을 거쳐간 모든 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왔어요.
진짜 잘못한건 클린스만을 그 자리에 앉혀두고 지지한 사람이죠. 뭐 그래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팀인데 우리 아니면 누가 응원합니까? 이 정도에서 멈췄어야지 별의별 이유를 다 만들어가지고 클린스만의 입지를 강화시켜준 그 사람들의 잘못이죠. 여러번 말했지만 이번 대회만큼 난이도가 쉬운 대회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좀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서론에 조심스럽게 썼지만 국가대표팀 축구 관련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곤욕을 크게 치를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요. 이렇게 결과가 나고 나서야 일제히 들고 일어나는건 저도 그렇고 진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번 클린스만호가 결과만 안나와서 문제인 케이스도 아니었고요. 누가봐도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건 전문가들이 훨씬 더 빠르게 캐치했을거라 생각하는데... 차라리 월드컵이었으면 이해라도 합니다만 아시안컵을 가지고...
4. 어처구니없는 프레임들
개인적으로 국대 축구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보니 별의별 말도 안되는 프레임들이 정설인 것 마냥 떠도는 것에 대해 굉장히 짜증이 났습니다. 축구 팬으로서 의견을 낼 수 있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만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지한 소리로 남들을 설득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헛소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건 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몰랐다면 나중에 반성이라도 해야죠.
예를 들어, 클린스만이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켜서 후반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클린스만이 체력훈련만 시킨다는 이야기는 필립 람이 10년 전에나 한 인터뷰 딱 하나 뿐이에요. 이번 국가대표팀에서는 그것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나 근거를 제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냥 기정사실인 것 마냥 그걸 가져다 쓰고 그러는데 결과에 끼워맞추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클린스만은 선수 장악력이 좋으니 전술 잘짜는 코치를 붙여주면 된다 이런 말도 똑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감독으로 쓰면 되지 뭣하러 코치로 씁니까... 우리나라 국대가 다루기 힘든 스타일도 아니고요. 이걸 긍정하면 신태용 활용해 아시안컵 준우승한 슈틸리케도 아주 훌륭한 선례로 남죠.
요즘 축구 전술 진짜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00년대 축구, 10년대 축구, 20년대 축구 쭉 살펴보면 이렇게까지 다른가 싶을 정도로 변화된 요소들이 많고요. 이러한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는 감독들은 한순간에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백패스, 전방 압박, 스위퍼 키퍼, 골키퍼의 빌드업 참여 등등 과거라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금기시되는 것들이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소양으로 자리잡고 있고요. 최근들어 축구 커뮤니티들을 대강 좀 살펴봤는데 정작 발전 없이 그대로인건 몇몇 팬들의 시각이지 않나 싶은...
결과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초등학생까지도 갈 것 없이 유치원 수준에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결과론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결과론으로 이야기를 하려면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왜 과정을 결과에 짜맞춰서 옳고 그름까지 부정하려고 이야기를 하는지... 누구 말대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그분들이죠. 아 물론 백번 양보해서 팬들은 그래도 됩니다. 팬이 아니라 협회나 수장이 그런 스탠스에 영합하려고 하니까 문제인거지.
이겼으니 어쩄든 됐다. 이런 이야기는 뒤가 없을 때나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뒤에 아주 수많은 길들이 남아있죠. 그리고 당장 현재에는 손흥민을 비롯해 다시 언제 올까 싶기도 한 역대급 재능들의 최전성기가 걸려있고.
5. 그래서 앞으로는?
솔직히 클린스만이 아무리 못해도 현재 스쿼드를 가지고 본선 48개국 월드컵 본선 진출도 못하겠나 싶긴합니다. 그 과정이나 혹은 본선 확정 이후에 졸전을 거듭해서 월드컵 본선에서도 정말 클린스만이 지휘봉을 들고 있을 수 있는지는 장담을 못하겠지만... 전자든 후자든 그동안 한국대표팀이 수없이 반복해왔던 실수죠? 벤투 때 그 고리를 끊어버나 싶어서 참 좋았는데...
결국 월드컵을 부랴부랴 준비해야 했던 신태용, 홍명보, 아드보카트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참고로 한국 대표팀은 02년 이후 그렇게 준비했던 월드컵은 전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그렇지 않았던 벤투와 허정무는 16강에 진출했습니다. 물론 무조건 믿어준다고 월드컵에서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겠지만요. 이번에는 축구협회가 기민하게 움직일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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