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데블스 플랜 3주차 및 인물별 최종 후기 (장문, 스포있음)

현명        작성일 10-11        조회 554     

개인적으로 1~2주차가 기존의 게임서바이벌에 비해 순한 맛이었다면.. 3주차는 뭐랄까 좀더 슴슴한 느낌이 강했네요.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슴슴했던 건 게임서바이벌 경험자를 배제한 캐스팅 +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합숙 + 협동 상금매치라는 여러 장치들 간에 아다리가 맞으면서 그렇게 되어버린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 제 기준으론 콩픈패스는 고사하고 사기경마게임이나 생선가게 먹이사슬 모노레일 어때정문아 십이장기 등등 에서 나름 재밌었던 에피소드들만큼의 쾌감을 준 메인매치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근데 그럼에도 재밌게 봤어요. 정치구도가 짜이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시청자의 시선에서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가장 중요했을 게임이 아쉬웠음에도 나름 몰입해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플갤에서는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결과적으로 [빌런]이라 할 만한 참가자가 딱히 없는 것도 자극 측면에서 아쉬운 점일 수 있겠으나 나름 깔끔하게 즐기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이하부터는 3주차 내용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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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을 감옥 금고의 보상은 생각보다 많이 단순했습니다.
"데블스 플랜"이라는 프로그램명의 떡밥이 덜 풀린 느낌이기도 했고 뭔가 판을 뒤엎을 만한 장치가 아닐까 했는데, 단순히 플레이어의 체급을 엄청나게 키워주는 장치로 작용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대신 탈락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해야 했던 점은 나름 긴장감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플갤에서는 오목 AI의 수준이 상당히 낮은 것에 대해 주작설이 제기될 정도로 반응이 안좋은데, 오목의 심오한 세계(필승법이 있다는 얘기라든지 룰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얘기라든지)를 전혀 모르는 저로서는, AI가 좀 못해야 사람이 승부해볼 구석이라도 있지 평범한 수준의 AI였으면 저게 그냥 게임이 아니라 무조건 떨어지는 함정처럼 느껴졌을 거 같긴 합니다. 거기다 단판승부 해야 하는 입장에선 AI가 바보라는 가정을 하기는 어려웠을테니, 일단 일정 수 이상은 버텨가면서 플레이를 해야 하기도 했고요.


한편 감옥 보상인 대량의 피스는 이게 정말 마지막날에 풀렸을 때 극대화될 수 있는 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소수연합이 NEXT YEAR를 하루 먼저 발견해서 4일차 감옥에서 문제가 풀렸다면..
물론 이시원 플레이어가 또 졌을 가능성이 크긴 하겠지만 이겼다 하더라도 5일차 게임인 땅따먹기는 다수가 다구리를 쳐서 특정 1인의 피스를 깎아먹을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구도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이로우를 앞두고 소수연합의 생존자가 대량의 피스를 들고 나왔다는 게 결과적으로 다인연합의 공리주의를 부수는 통렬한 카운터로 작용했습니다. 저울게임에서 이미지를 구겼지만 하석진은 여전히 수식게임에서 중상위는 되는 플레이어였고, 베팅게임은 표로 죽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수연합이 준결승까지 피스를 평준화하면서 많이 살아남았던 것은 오히려 족쇄가 되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게임 공개되기 전에는 석진이형 죽이고 시작하자 소리가 왕왕 나왔는데 인게임에서는 다수 대 소수 구도는 커녕 각자도생도 버거워하는 모습이 나왔죠. 궤도 정도가 옆자리 하석진 견제하면서 자기 플레이 잘 했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준결승이라는 타이틀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결승전은... 두 플레이어 모두 좀 지친 거 같아서 꽤나 싱겁게 끝났었던 거 같습니다. 나인 멘스 모리스 2차전 정도가 뭔가 메타를 뒤집는 듯한 플레이가 나와서 재밌었던 것 같네요.

(쓰다 보니 자꾸 게임의 이게 아쉽다 저게 아쉽다 하게 되는데 전 진심으로 이 프로 재밌게 봤습니다. 흐흐)





마지막으로 플레이어 별 간단히 리뷰 남기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의 대부분의 언행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가정합니다.)


- 기욤 :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음. 두 게임 모두 메인매치 이해도가 아쉬웠습니다. 피의게임 후지이미나도 그렇고 외국인이라 그런지 언어적 순발력 너프먹고 시작하고 정치 구도싸움에서 손해보고 시작하고 이런 게 없진 않나봐요. 

-김동재 : 1일차에선 다들 삽질하는 중에 혼자 게임답게 게임했고, 2일차에선 전략 이상하게 짜서 시작하자마자 게임 터지고, 3일차에선 임시동맹의 승리를 위해 백방 뛰었음에도 디테일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조기 탈락해버렸습니다. 배신이 반드시 나오는 게임인 걸 본인도 알았고 그래서 후기방송에 언급됐듯 거짓정보 흘리는 전략도 짰던 것 같은데, 중간에 계산을 실수한다든지 정보 공유를 꺼린다든지 해서 의심을 키운 게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습니다. 야망 때문에 초반 정치구도에서 타겟이 됐고, 그걸 극복할 만한 실력은 못 보여줬지만, 그래도 이렇게 욕심 있게 해준 덕에 시청자 입장에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 이혜성 :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준 것 없이 탈락한 여러 플레이어 중 한 명인데.. 적극성 한 끗이 아쉽습니다. 궤도 유튜브의 리뷰방송에서도 언급된 내용인데, 사실 동재-유민-혜성 조가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동재는 가짜번호 만들어서 뿌릴 생각도 했고. 사실 이런 전략을 실행하는 건 병풍이 할 때가 가장 효과적인 법인데.. 결국 그렇게는 못 됐죠. 개인적으로는 회사 피트니스에서 러닝하면서 주로 보는 프로그램들이 역사예능이라 이분이 그런 프로에 자주 나와서 이름은 모르고 얼굴만 알았는데, 앞으로는 좀더 반갑겠네요.

- 조연우 : 4일차까지는 이혜성 이상으로 스텔스 모드였던 거 같아요. 안보이는 게 전략인가 싶을 정도.. 2일차는 주사위 억까라 넘어가자면 1일차에서도 시민으로서 어필을 너무 안하기도 했고, 혼자 발견했던 감옥 금고를 아무 조건 없이 오픈하면서도 정치적 이득을 챙긴 것도 없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승부로부터 해탈한 듯한 플레이어였고 그래서 탈락하고 눈물 보이는 게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 이시원 : 이쪽은 정말 조연우의 안티테제같은 느낌.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고 했고 결과가 안좋을 때가 더 많았는데, 개중에 그나마 주효했었던 행보를 통해 소수연합의 일원이었던 하석진 우승에는 나름의 공헌을 한 느낌입니다. 3일차에 동재 떨어지고 밤에 불만 표시한 것도, 4일차에 감옥 들어가서 승관이랑 얘기한 것도 그렇고 그 순간순간을 잘라서 보면 그냥 의미없이 투덜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원하는 걸 얻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3일차 이후로는 왕따전략은 더이상 유지되지 못했고(5일차 게임이 왕따 하나 담그기 딱 좋은 게임이었음에도!), 승관이는 전날 비밀로 하라고 한소리 들었던 금고 정보를 공유해줬죠. 본인은 그 결실을 누리지 못하고 떨어졌지만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김동재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의 서사를 이끌어준 인물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어요. 

- 박경림 : 이분은 그날그날 게임은 열심히 잘 했지만 우승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피스 공동 1위였는데 다 나눠주고 시작하더라고요. 사실 겜적으로는 딱히 할 말은 없고, 왜 하객이 5천명이나 왔는지는 정말 잘 느꼈습니다. 사회성도 재능이라 본받는다고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본받고 싶은 인간미가 있는 참가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저택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자 이 프로그램을 슴슴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고나 할까요.

- 승관 : 순함 원툴 플레이어. 다수연합 플레이어 하면서도 소수연합 때문에 맘에 걸려하는 거 같았고, 딱히 개인전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았으니 이런 프로를 캐리할 만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박경림이랑은 다른 느낌으로 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예쁨 받는지는 잘 알겠더라고요. 저라도 저런 동생 있으면 잘해주고 싶었을듯... 마지막에 다른 플레이어들 따라하는 건 정말 재밌었습니다.

- 서유민 : 뭔가 주도적인 플레이를 할듯 말듯 할듯 말듯 하다가 불발로 끝나버렸습니다. 1일차 기욤의 제스처를 보았던 것, 3일차에서 가짜뉴스를 듣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 5일차에서 병풍이미지 이용해서 박경림 아이템 하나 꽁으로 받은 것 등등 분기점이 될 만한 플래그들을 나름 차곡차곡 모아왔던 거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그냥 맥거핀처럼 탈락해서 아쉬웠습니다.

- 곽준빈 : 가장 변화무쌍하게 플레이하려고 했던 플레이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수연합 중심에서 초반 안정적으로 가다가 가장 먼저 딴생각을 하고 4, 5일차에는 전혀 다른 플레이어와 게임하기도 했고요. 단 개인전 능력으로 보여줘야 할 때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만약 이게 지니어스처럼 긴 호흡으로 가는 플레이어였다면 좀더 인기가 많았을 거 같은 플레이어라 생각합니다.

- 서동주 : 다수연합의 초반 정치 아젠다를 만든 게 궤도였다면 그게 잘 굴러가도록 만든 건 서동주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정치라는 건 이치에만 맞게 행동하면 안 굴러가거든요. 냉혹하게 상대방 몰아붙이는 실행력과 강단(어떻게 보면 뻔뻔함)이 반드시 필요한데, 초반에 상대연합 여러칸 밀어버린 것부터 시작해서 손에 피 묻히는 역할을 맡아준 덕에 다수연합이 초반에 큰 우위를 점했던 거 같습니다. 궤도 얘기할 때 언급되겠지만 서동주가 없었으면 궤도연합의 초반은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물론 3일차 이후에는 본인도 이시원과 논쟁하면서 현타가 온 건지 초반의 약자vs강자 구도의 유통기한이 다해서인지 왕따전략을 사실상 그만두기는 했지만, 사실 2일->3일차 넘어갈 때 강자vs약자 구도 재활용한것만 해도 정치 빡세게 안했으면 안먹혔을 수도 있거든요.
아무쪼록 초반 정치구도를 캐리했고 상금매치에서도 암기력으로 캐리하긴 했으나, 결국 PvP 개인전에서 결승멤버보다는 한끗 아쉽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준결승에서 하석진을 노리는 대신 칩 적은 플레이어들 돈으로 눌러가면서 칩 빨아먹는 플레이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애초에 본인이 베팅 게임애 대해 그리 자신이 있어보이진 않기도 했습니다.

- 궤도 :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플레이어였던 거 같습니다. 우승자 가리는 경쟁프로에서 공리주의는 사실 시작부터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궤도가 내세운 아젠다가 정치적 구호일 거라 생각했는데, 본인은 나름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해왔던 거 같아요. 정말 과학얘기 많이 하고 싶었던 건지... 중간부터는 애초에 공리주의라는 게 성립 안한다는 걸 본인도 눈치를 챈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5~6일차에 각자도생 모드로 보여준 모습은 멋졌습니다. 결승에 갈 자격이 있는 플레이어였던 거 같아요. 다만 자신의 이념과 동료들이 한번에 다 날아가는 걸 견디기 힘들었는지 결승에서는 시작부터 무너져있던 거 같아 좀 아쉬웠습니다. 애초에 이 분은 악역을 맡아서 독하게 플레이하는 게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어요. 초반에 강자 vs 약자 구도짜고 왕따전략으로 기세 잡긴 했지만 만약 서동주가 없는 상황에서 소수연합이 좀더 대놓고 감정에 호소하는 타입이었으면 생각보다 왕따전략을 금방 그만뒀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하석진 : 수사관 트롤부터 시작해서 동물원게임까지는 적응 못하는건가 싶었는데, 돌아보니 정작 실속은 나름 잘 챙겨왔습니다. 소수연합의 암흑기였던 2~3일차에서 피스를 오히려 벌었고, 손을 놔버리다시피 한 4일차는 어차피 리스크가 적은 게임이었으니까요. 저울게임에서 이미지를 다소 구겼지만 넥스트이어 풀고 나서 좀 총기가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사람 - 사람 간의 변수들이 줄어들고 답을 찾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나니 우승자의 자격이 그때 드러난 것 같았습니다. 준결승은 오목 이긴 게 중요했지 하이로우 자체는 이미 딴 피스로 질 수 없는 게임이었던 거 같고.. 결승 1경기 뒤집은 건 꽤 멋졌습니다.


사실 플레이어 한명한명 돌아보니 나름 정은 가지만, 다음 시즌에는 좀더 메인매치의 재미가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종연PD와 제작진 역시 플레이어가 이렇게 짜여지고 플레이가 그렇게 진행된 시점에서 방송을 살리는 능력은 인정합니다만 애초에 캐스팅 자체가 게임서바이벌 특유의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최적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름 화제성 있었던 프로그램이니 망했다 생각하진 않고 더욱 발전한 다음 시즌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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